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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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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사위로 피어난 ‘행복’ 아름다운 금빛인생! 김동순 씨
“양로원 등 외로운 사람과 즐거움 나눠 행복”

춤과 함께 한 인생 언제나 마음은 ‘청춘’ ‘맑음’



조용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어느 때는 마치 멈춘 듯이 허공에 그려진 길을 따라 손끝이 움직인다. 색깔 고운 치맛자락도 흥에 겨운지 가락에 맞춰 하늘거리고 춤추는 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꽃처럼 피어나 한 폭의 무용도를 그려낸다.

‘행복’.
이렇듯 고전무용에 푹 빠져 춤을 추노라면 김동순(69)씨는 나이도 고뇌도 모두 잊고 내면에서 스며 나오는 행복감에 온 마음이 즐겁다.

전문가는 아니어도 춤과 함께한 세월만 14년이기에 손끝 하나에도 제대로 된 춤 매무시가 있음을 안다. 그래도 배울 것은 많고 많아 새로운 작품을 할 때면 지금도 여전히 긴장하고 땀을 흘린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도전거리는 70을 바라보는 마음을 매번 새롭게 하는 신선한 바람과 같다. 그래서 춤과 함께하는 지금, 마음은 언제나‘맑음’이라고.

“지금까지 배운 춤이야 많죠. 새타령, 천안삼거리 같은 기초에서 아리랑, 부채춤, 화관무, 태평무, 진도북춤, 장구무용, 살풀이, 기방살풀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춤을 배웠어요. 처음에는 익히기 어려웠지만 즐겁게 배우고 무대에 올라 작품을 멋지게 발표한 뒤에 느끼는 보람과 감격은 매우 크지요.”

김씨는 춤을 추며 느끼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어 더욱 행복하다.

김씨는 자신이 몸담은 문화센터 내 무용 단원들과 함께 양로원 등을 들러 외로운 마음을 달래고 즐거움을 선사한다. 뜻이 맞는 몇몇 사람들과 작은 무대에도 가끔씩 올라 우리 춤의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특히 더욱 행복을 느끼는 무대가 있으니 바로 학회원과 함께 즐거움을 나눌 때다. 작고 소박한 무대여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김씨의 춤을 지켜보며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회원들을 볼 때면 즐거움은 몇 배가 된다. 함께한 동료들 또한 회원들의 진심 어린 호응과 친절함에 감복하는 모습을 보고 학회원이라는 긍지, 어본존과 스승을 만났다는 감사함은 온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춤을 배웠고, 춤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김씨는 매번 되새긴다.

김씨가 춤을 접하고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때는 지금부터 14년 전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마음에 담았지만 척박한 현실은 좀처럼 여유를 주지 않았다.

“젊은 시절 꽃꽂이나 무용을 하고 싶은 마음은 내내 있었지만 먹고 사느라 좀체 기회를 잡지 못했지요. 불법(佛法)을 못 만났다면 지금처럼 춤 추는 것은 물론 노년을 즐겁게 지내는 일도 생각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어본존 앞에 앉으면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 김씨는 친척에게 불법(佛法)은 들었으나 기성불교를 믿던 터라 심하게 반발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심하는 친척은 차츰 좋아지는 반면 김씨네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차 어둠으로 향했다. 급기야 남편은 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섰다. 엄연한 현실에 김씨는 용기를 내어 니치렌불법(日蓮佛法)을 받아들였고, 얼마 뒤 남편은 다시 건강을 되찾아 수명을 연장해 부부 함께 신심을 관철했다.

그러다 아들이 대학교 2학년, 딸이 중학교 3학이 됐을 때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김씨는 팔을 걷어 부치고 생활전선으로 뛰어 들어야 했다. 그때 시작한 일은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주부사원. 그런데 성격이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김씨에게 남의 집 대문을 넘어 낯선 사람에게 물건을 사라고 권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삶에 치여서 매일이 고단했다. 그러나 그때만큼 확신 있는 신심을 한 적이 없다고.

“어려움을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더욱 어본존이 그립고 간절했어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창제하고 학회활동에 힘썼지요. 지금 이렇게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도 그때 제 자신을 단련하며 복운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정신 없이 10여 년을 일하면서 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내고 53세가 되던 해 비로소 삶의 여유를 찾았다. 그때 김씨는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면서 노년을 가치적이고 활력 있게 보내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을 거듭했다.

직후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꽃꽂이를 시작한 김씨는 얼마 후 춤의 매력에도 한껏 빠져 들었다. 모두 김씨가 생각한 그대로 남과 즐거움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 속에서 많은 벗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학회와 불법을 알리기도 했다.

특히 내면으로 추는 우리 춤은 차분한 성격과 잘 어우러져 김씨의 삶을 더욱 빛냈다. 이 모든 것이 어본존을 만난 덕분임을 상기할 때 그 감사함은 그저 깊고 깊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려웠던 시절도 버릴게 아니었어요. 신심을 더욱 깊게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어려움을 딛고 일어난 뒤 사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아요. 또 춤을 만나‘노년도 이렇듯 아름다울 수 있구나’하고 행복해 하는 요즘이에요. 이러한 금빛 인생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요.”

·부평권 화랑지부 婦지구지도원



이상도(sdlee@hknews.co.kr) | 화광신문 : 10/04/23 873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