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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윤상교 수협은행 응암동지점장
지난해 연말, 서울시 은평구 응암4동에 있는 수협은행 응암동지점을 찾았다. 세밑이 가까워지면 어느 기업이나 단체든 바쁘기 마련이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상교(57) 지점장은 고령의 한 고객과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그는 온화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결산기여서 신경 쓸 일이 많지만 초조하거나 걱정스럽지는 않아요. 늘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거든요. 신심(信心)이 있으니까 마음이 든든해요.”

그의 자신감은 실적이 말해준다. 그는 지점 평가에서 하위권을 맴돌던 응암동지점을 단숨에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더구나 두 가지 악재를 이겨낸 결과여서 그 성과는 빛을 발한다.

응암동지점은 고객들의 경제력이 영세하고 주요 고객도 고령자들이다. 그러다 보니 2008년 1월 그가 부임했을 때만 해도 응암동지점은 하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그의 부임과 동시에 가까운 곳에 금융회사 지점 한 곳이 문을 열었고, 100미터 거리에 대규모 재개발 공사가 시작됐다.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고객의 이탈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고객들이 이웃집에 들리듯이 편안하게 찾아오도록 직원들과 최선을 다했다. 또 지점 대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어린이집 고객을 관리하는 데 공을 들였다. 자주 어린이집 원장들과 만났고, 증축이나 보수 공사를 할 때면 저렴한 금리를 제공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면서 응암동지점은 상승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응암동지점의 변화를 이끌어낸 그의 리더십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책임과 권한을 철저히 위임하는 것. 그는 마케팅팀과 운영팀의 두 팀장에게 전권을 맡기고, 자신은 확인만 한다. 이렇게 하니 저마다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또 하나는 서로간의 신뢰를 쌓는 것이다. 그는 직원들의 경조사를 꼭 챙기고, 생일 선물도 직접 마련한다. 이따금씩 거래처에서 받은 선물도 직원들에게 건넨다. 연말에는 노고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격려금을 나눠준다. 이렇게 세심하게 마음을 쓰니 직원들도 편안하게 다가오고 자연스럽게 지점의 성과로 이어졌다.

모두를 일깨워 승리로 이끄는 리더의 힘! 이는 수협에 입사한 이래 강한 낙관주의와 끊임없는 도전으로 돌파구를 열어오면서 차곡차곡 쌓은 것이다.



신심 근본, 강한 낙관주의로 승리의 인생 궤적을 만들어온 윤상교 수협은행 응암동지점장(오른쪽), 마지막 열정을 불태울 때까지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수협과 인연을 맺은 것은 30년 전인 1980년 12월. 7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수협중앙회 기술직 공채로 첫 발을 내디뎠다. 그때도 수협은 보수도 좋고 안정적이어서 인기 있는 직장이었다.

첫 도전은 승진이었다. 그때만 해도 기술직에 대한 편견이 심해 승진 문턱이 무척 높았다. 그 또한 승진을 갈망하는 가운데 입사 8년만인 1988년, 드디어 승진고시가 공고됐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경쟁률이 156대1이었다. 그때 아내를 따라 신심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그에게 승진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지만 부부는 한마음으로 부딪쳤다. 남편은 밤을 새워 공부하고, 같은 시간에 아내는 밤샘 창제를 했다. 결과는 당당히 합격!

“불법(佛法)의 힘이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때부터 불법을 확신하고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불법을 알려주는 용기도 생겼습니다.”

두 번째 도전은 전직이었다. 그는 강원도 거진 무선통제국장, 울릉어업무선국장을 거치며 일반직으로 전직하기로 결심했다. 기술직은 오지를 돌거나 이동이 잦아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때도 기원 근본으로 무사히 전직 시험을 통과했다.

그 후 그는 다시 한번 은행원으로 변신했다. 1992년 춘천군납사업소장을 거쳐 춘천지점에 차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처음에는 은행원 업무를 잘 몰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용기 하나로 헤쳐나갔다.

그리고 1998년, 만 43살의 젊은 나이에 춘천지점 지점장이 됐다. 많은 선임자들을 뛰어넘는 조기 승진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점장은 대부분 50대였고, 40대 지점장은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만큼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는 “큰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지만 춘천지점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라며 첫 지점장 시절을 돌아봤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2002년 1월 새로운 지점에 부임했을 때다. 전임 지점장이 처리한 고액 대출이 부실화하면서 그가 모든 책임을 지고 보직에서 물러나게 된 것. 이어서 20여 명의 지점장들과 명예퇴직 프로그램에 편입돼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어찌 보면 억울하고 불운한 일이었다.

“지금껏 단 한번도 불법을 의심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신뢰했지만 이때는 다소 흔들렸습니다. 그때 아내는 마(魔)의 작용이 분명하다고 일깨워줬습니다. 또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어서 1253쪽)라는 성훈, 그리고 ‘강한 낙관주의로 용기백배해 승리하라’라는 스승의 스피치가 큰 힘이 됐습니다.”

그는 결국 ‘스승’께 호흡을 맞추고 ‘승리’를 확신한 기원으로 갖가지 어려움을 이겨냈다. 그리고 2004년 1월, 지점장으로 복귀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회사측의 배려로 유럽 연수와 장기 연수도 받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 함께했던 20여 명의 동료는 모두 회사를 떠났다.

지금 응암동지점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하는 윤상교 지점장. 이제는 정년이 멀지 않았지만 기꺼이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싶습니다. 어본존께 끝까지 기원해, 내가 원하는 곳에서 멋진 마무리를 할 겁니다.”


·은평권 연가지부 반장



장호정(hjjang@hknews.co.kr) | 화광신문 : 10/01/15 860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