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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질병치료에 중요역할 담당하는 임상영양사의 꿈 이뤄 ‘ㄱ’병원 임상영양사 최경씨
초창기 케이블방송 출연·인터넷 신문에 기고 등 활동 펼쳐

힘든 여건의 환자를 치료한다는 보람·사명감으로 즐겁게 도전



15년 전 꿈꿨던 결의가 현실이 된 최경씨.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안고 더욱더 밝고 큰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린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일을 하면서 더욱더 재미를 느끼는 요즘입니다.”

서울에 위치한 유명 종합병원에서 임상영양사로 일하는 최경씨. 그는 10년이 넘게 일해 온 임상영양사란 직업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임상영양사란 병원 내 환자의 질환이나 상해를 치료할 목적으로 의료진과 함께 환자의 영양을 관리하는 전문 영양사를 일컫는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 임상영양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돼 보편화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197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흐름이 일면서 근래 들어 임상영양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경향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예전까지는 그냥 잘 먹기만 해도 좋다고 여기거나, 수술 전후에는 속을 비워야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환자의 영양상태를 어떻게 관리하냐에 따라서 치료 결과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러한 데이터와 경험이 축적되면서 임상영양의 개념이 중요하게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죠.”

임상영양사가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영양관리를 시작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환자의 영양상태를 조사해 영양불량이 있거나 위험수준인 것으로 판단한 경우 의료진은 임상영양사에게 영양관리를 요청한다. 둘째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 영양관리 자체가 매우 중요한 경우인데 당뇨병, 고혈압, 신부전증 등은 그 대표적인 질환이며, 이러한 환자를 대상으로 영양관리 상담과 교육을 담당한다.

이밖에 입으로 직접 먹을 수 없어 수액으로 영양을 공급해야 하는 경우 환자에게 적정한 영양이 어느 정도인지 산정하는 일 또한 임상영양사의 몫이다.

이와 함께 환자 치료에 영양상태 연구결과가 매번 새롭게 나오고 있어 새로운 정보, 지식을 습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학술대회나 전문저널, 전문학회 활동은 신지식을 얻는 중요한 경로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환경이 열악한 것이 사실”이라며 안타까워한다. “큰 병원이 아니고서는 대부분이 임상영양사가 급식과 임상영양관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병원 규모에 따라 서비스의 격차도 매우 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라 해도 최씨는 전망을 밝게 본다.

“선진국보다 많이 뒤처진 것이 현실이지만, 근래 들어 갑자기 발전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임상영양사들이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길이 계속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임상영양사의 역할을 희망적으로 보는 최씨도 처음에는 이 일이 생소하기만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한 최씨는 자신이 선택을 잘한 것인지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임상영양사 자격을 취득한 어느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임상영양사라는 직업에 큰 흥미를 지니게 됐다.

“대학 입학 후 처음 결의를 발표하며 학회원님들 앞에서 약속했습니다. ‘임상영양사가 돼서 광포를 위해 아픈 환자들을 도우며 스승께 보은하고 싶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최씨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갈등했다. 일반 회사에 비해 병원 영양사는 취직이 매우 어려웠고, 병원에 취직한다 해도 1년 정도는 박봉 속에서 인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슴에 갈등을 안고 기원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간호 신발 한 켤레를 사서 들어왔다.

취직하고자 했던 병원에서는 그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 이는 곧 어머니가 보이는 무언의 의지이기도 했다.

결국 최씨는 병원으로 취직해 인턴을 시작했다.

그 후 1년도 채 되기 전 유명 대학병원으로 정식 채용됐고, 3년 정도 지난 뒤 지금의 병원으로 옮겨 일을 시작했다. 얼마 뒤에는 대학원에도 진학해 임상영양에 대한 전문지식의 폭도 크게 넓혔다.

대한영양사협회에서도 활동을 하면서 모 케이블 방송에 비만관리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모 인터넷 신문에도 글을 기고하며 사회에서도 활동을 펼쳤다. 협회에서 담당한 비만관리 질의응답은 지금까지 계속하는 일이고, 최근에는 그 동안의 노고를 인정받아 직장에서 포상도 받았다.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것이 공덕 속에 있었다고 실감합니다. 15년 전 막연하게 한 결의가 이렇게 현실이 돼 즐겁게 일하는 것만으로도 그렇지요. 지금까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한 적은 있어도 고통스러워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부모님이 만들어 놓으신 탄탄한 배 위에 타고만 있었다고 할까요. 이제는 어떤 폭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새로운 저만의 배를 만들겠다고 마음 깊이 다짐하고 있어요.”

이와 함께 최씨는 임상영양사에 대한 열정을 이렇게 말한다.

“아직은 ‘여건이 힘들다, 남들이 잘 모른다’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먹지 못해 코로 영양을 주입하던 환자들이 입으로 먹으며 퇴원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의료진과 함께 공부하며 모르던 것을 아는 쾌감도 대단하고요. 정말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직업입니다.”


·소사권 성주지부 반담



이상도(sdlee@hknews.co.kr) | 화광신문 : 10/01/15 860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