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풋호박으로 부농의 꿈 이룬 소진성·탁홍자 부부
‘소진성표’ 풋호박, 도매시장서 인기 최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초록빛 줄기는 거침이 없다.
비닐하우스 뼈대를 기어오르더니 머지 않아 거대한 초록 터널을 만들 기세다.
무성한 줄기 곳곳에는 수수한 통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시드는 꽃잎 밑에는 매끈한 연둣빛 열매들이 탐스럽게 맺힌다.
“사람들이 활짝 핀 꽃을 보고 좋아할 때면 가슴이 뿌듯하지요.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줘 일하기도 수월해요. 하나하나 따는 재미도 쏠쏠 하고요.”
전북 익산시 신동에서 사는 소진성(52)·탁홍자(49) 부부는 요즘 풋호박을 따느라 손이 바쁘다.
10마지기(6,600m2)에 심어놓은 풋호박을 한창 수확하기 때문이다.
풋호박은 보통 6월 중순부터 시작해 가을에 서리가 내릴 때까지 4~5개월 동안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익산에서 풋호박 재배하는 농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중에서 소씨가 키운 풋호박은 도매시장에서 늘 인기 상품이다.
상인들은 ‘소진성’이란 이름 석자에 안심하고 구매한다고 한다. 그 비결은 바로 거름에 있었다.
“호박은 퇴비를 많이 줄수록 잘 커요. 우리는 퇴비에 신경을 많이 쓰니까 다른 집보다 늦게까지 호박을 수확할 수 있거든요.”
소씨의 인생에서 풋호박은 보물이다. 젊은 시절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풋호박이란 밑거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뒤를 이어 농사에 뛰어든 것은 1985년. 결혼을 하고부터다. 그렇지만 시작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는 부모님의 병고와 빚 보증으로 농지를 몽땅 헐값에 판 상태였다. 돈도 없었다. 주위에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저 밤낮없이 일했다.
“무척 힘들었지만 신심(信心)만큼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면서 언젠가는 33,0521m2(1만평)의 내 땅에 농사를 짓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고생만 반복했다. 땀을 뻘뻘 흘렸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일을 하다 학회활동에 나서면 동네 사람들이 “출세 할 일 있냐”라며 비꼬기 일쑤였다.
그래도 묵묵히 인내하며 농사일과 학회활동에 모두 열심히 도전했다. 그러면서 지혜를 짜냈다. 풋호박을 재배하기로 것이다.
“호박은 다른 작물에 비해 실패 확률이 낮고 가격파동도 별로 없어요. 또 돈도 많이 들지 않고 4개월 넘게 계속 수확할 수 있거든요.”
풋호박 농사는 첫해부터 성공이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땅도 사고 살림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렇게 20여 년간 한결같이 풋호박을 키우면서 자신의 꿈에 차근차근 다가섰다. 그리고 지난해 1억2천만 원에 달하는 최고 수입을 올리며 청춘의 꿈을 완벽한 현실로 만들었다.
5년 전부터 익산원예농협에서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농업 발전에도 이바지하는 그는 “‘농사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위에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바람을 말했다.
나아가 “튼실한 뿌리에 튼실한 열매가 맺히듯이, 지역광포의 뿌리를 키우기 위해 ‘지금부터’라는 마음으로 광선유포를 위해 더욱 힘쓰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전북방면 부방면장·익산권 지구부부인부장
장호정(hjjang@hknews.co.kr) | 화광신문 : 09/07/10 836호 발췌
‘소진성표’ 풋호박, 도매시장서 인기 최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초록빛 줄기는 거침이 없다.
비닐하우스 뼈대를 기어오르더니 머지 않아 거대한 초록 터널을 만들 기세다.
무성한 줄기 곳곳에는 수수한 통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시드는 꽃잎 밑에는 매끈한 연둣빛 열매들이 탐스럽게 맺힌다.
“사람들이 활짝 핀 꽃을 보고 좋아할 때면 가슴이 뿌듯하지요.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줘 일하기도 수월해요. 하나하나 따는 재미도 쏠쏠 하고요.”
전북 익산시 신동에서 사는 소진성(52)·탁홍자(49) 부부는 요즘 풋호박을 따느라 손이 바쁘다.
10마지기(6,600m2)에 심어놓은 풋호박을 한창 수확하기 때문이다.
풋호박은 보통 6월 중순부터 시작해 가을에 서리가 내릴 때까지 4~5개월 동안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익산에서 풋호박 재배하는 농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중에서 소씨가 키운 풋호박은 도매시장에서 늘 인기 상품이다.
상인들은 ‘소진성’이란 이름 석자에 안심하고 구매한다고 한다. 그 비결은 바로 거름에 있었다.
“호박은 퇴비를 많이 줄수록 잘 커요. 우리는 퇴비에 신경을 많이 쓰니까 다른 집보다 늦게까지 호박을 수확할 수 있거든요.”
소씨의 인생에서 풋호박은 보물이다. 젊은 시절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풋호박이란 밑거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뒤를 이어 농사에 뛰어든 것은 1985년. 결혼을 하고부터다. 그렇지만 시작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는 부모님의 병고와 빚 보증으로 농지를 몽땅 헐값에 판 상태였다. 돈도 없었다. 주위에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저 밤낮없이 일했다.
“무척 힘들었지만 신심(信心)만큼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면서 언젠가는 33,0521m2(1만평)의 내 땅에 농사를 짓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고생만 반복했다. 땀을 뻘뻘 흘렸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일을 하다 학회활동에 나서면 동네 사람들이 “출세 할 일 있냐”라며 비꼬기 일쑤였다.
그래도 묵묵히 인내하며 농사일과 학회활동에 모두 열심히 도전했다. 그러면서 지혜를 짜냈다. 풋호박을 재배하기로 것이다.
“호박은 다른 작물에 비해 실패 확률이 낮고 가격파동도 별로 없어요. 또 돈도 많이 들지 않고 4개월 넘게 계속 수확할 수 있거든요.”
풋호박 농사는 첫해부터 성공이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땅도 사고 살림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렇게 20여 년간 한결같이 풋호박을 키우면서 자신의 꿈에 차근차근 다가섰다. 그리고 지난해 1억2천만 원에 달하는 최고 수입을 올리며 청춘의 꿈을 완벽한 현실로 만들었다.
5년 전부터 익산원예농협에서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농업 발전에도 이바지하는 그는 “‘농사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위에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바람을 말했다.
나아가 “튼실한 뿌리에 튼실한 열매가 맺히듯이, 지역광포의 뿌리를 키우기 위해 ‘지금부터’라는 마음으로 광선유포를 위해 더욱 힘쓰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전북방면 부방면장·익산권 지구부부인부장
장호정(hjjang@hknews.co.kr) | 화광신문 : 09/07/10 836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