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권영대 권외과의원 원장
불법의 생명존엄 사상을 바탕으로 인술펴는 의사선생님
환자는 모두가 내 아버지·어머니! 주민은 모두가 병원 홍보대사
하얀 가운에는 두려움이 스며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아팠던 기억, 병에 대한 불안 등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딱딱하거나 불친절한 의사를 만났던 경험도 한몫 할 것이다. 그래서 의사의 따뜻한 한마디는 환자에게 안심이다.
경북 영덕군 영해면 성내1리에 있는 권외과의원(원장 권영대). 영해시외버스터미널 바로 뒤편에 자리잡은 이 병원은 친절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병원에 들어서면 산뜻한 인테리어와 깔끔한 분위기가 눈에 띈다. 시골의 특성상 외과를 비롯해 내과, 정형외과, 소아과 등 대부분의 진료과목을 책임진다. 병원 식구는 권 원장을 비롯해 물리치료사 1명, 간호조무사 3명 등 모두 5명이다.
최근에 병원 식구가 된 권은미 간호조무사는 “원장님이 친절하고 단골 고객이 많기로 소문이 나서 찾아왔어요. 진료할 때 환자를 세심하게 살피시고 처방전을 내릴 때도 얼마나 고민하시는지 몰라요.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행복한 분들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병원 자랑을 했다.
권영대(46, 외과전문의) 원장에게 제일의 원칙은 ‘환자를 가족처럼’ 여기는 것. 1996년 개원한 이래 이 원칙을 줄곧 지키니 고객들의 신뢰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졌다.
“언제나 어머니, 아버지처럼 환자들을 대해요. 그리고 많이 웃어요. 학창시절에는 웃음이 정말 많아 선생님께 혼이 난 적도 있었지요.”
권 원장이 진료를 시작하는 것은 오전 9시. 포항에서 출퇴근하는 그는 날마다 1시간 10분씩 차로 달려서 병원에 도착한다. 그리고 바로 진료를 한다. 환자들이 병원 문을 열기가 무섭게 몰려들기 때문이다. 진료 1시간 전부터 건너편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는 할머니들도 많다.
진료는 주중에는 오후 6시 30분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2시까지 계속한다. 10여 년간 주민들에게 신뢰를 쌓은 덕분에 환자는 끊이지 않는다. 한번은 하루에 332명의 환자가 몰려들어 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는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의사의 꿈을 가진 것은 고교시절. 시골에서 살면서 배움에 대한 한을 가졌던 아버지는 아들이 교사, 경찰관, 의사 중 하나의 직업을 갖기를 바라셨다. 이중 자신의 관심과도 맞고,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이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1993년 2월 외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1996년 7월 이곳에서 개원한 것은 군 복무 시절의 인연 때문이다. 전방을 거쳐 포항에서 2년간 군의관으로 근무한 것이 계기였다.
“포항에서 개업한 친구들 도움으로 개업을 했지만 솔직히 걱정도 많았지요. 그런데 한 주도 지나지 않아서 100여 명의 환자가 찾아와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정작 큰 어려움이 생긴 것은 개원한 지 5개월쯤 지났을 때였어요.”
그 때 종합병원에 입원했던 결핵 환자가 찾아왔다. 포도당 주사를 놔주었는데, 환자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그는 응급처치를 하고 구급차를 불러 환자를 종합병원으로 보냈다. 그런데 환자가 구급차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환자는 그야말로 사망 일보 직전에 병원을 찾은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중에 불가피한 일을 겪은 셈이지요. 그 후로는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해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지 종합병원으로 보낼지 적절하게 대처합니다.”
그 후로는 가슴 뭉클한 일들이 훨씬 많았다. 몇 년 전에 급성 심근경색에 걸린 50대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10분, 20분 아니 1~2분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바로 119에 전화했는데, 30분이 지나서야 구급차가 왔다. 그 사이에 응급처치를 하며 환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진땀을 뺐다. 다행히 목숨을 구한 그 아주머니는 나중에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한번은 장이 안 좋다며 한 할머니가 찾아왔다. 단순 엑스선 촬영에서는 장내 가스만 보였지만 가만히 증세를 들어보니 대장암에 걸린 듯했다. 할머니에게 종합병원 정밀검사를 권했고, 그 할머니는 대장암 수술을 마치고 건강을 되찾았다. 이와 같이 그의 손길을 거쳐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은 셀 수 없다. 이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권외과의원을 소개하며 자연스레 홍보대사가 됐다. 그리고 가끔씩 보자기에 과일을 싸와서 꺼내놓거나 직접 기른 채소를 건네는 등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끼게 한다.
그는 ‘늘 주민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자원봉사도 시작했다. 보육원 환자들에게 진료를 해주고 어린이날에는 성금을 낸다. 몇 년 전부터는 한 달에 2번씩 요양원을 찾아 노인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그들의 건강을 보살펴준다.
이러한 삶의 이면에는 생명존엄의 불법(佛法)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신심(信心)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병고를 겪던 어머니를 따라서였다. 그는 “나날이 공덕 속에 살고 있어요. 지금 돌아보면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다니고 병원을 개원한 후에도 어려움을 모르고 지냈어요”라고 말했다.
좌우명처럼 늘 마음에 새기는 것은 “일념에 억겁의 신로를 다하면 본래 무작의 삼신이 염념에 일어나느니라”(어서 790쪽)라는 성훈이다.
그는 앞으로도 주민들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소박하게 살고 싶단다. 그렇지만 광선유포(廣宣流布)를 위해서는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전진하겠다고 다짐한다.
“고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광포를 지휘하시는 위대한 스승께 호흡을 맞춰 더욱 사명에 도전하겠습니다. 1층에 병원, 2층에 개인회관을 제공하겠다는 목표가 있기에 즐겁게, 희망에 넘쳐 달려가겠습니다.”
·영일권 용흥지부 지부장
장호정(hjjang@hknews.co.kr) | 화광신문 : 09/03/13 819호 발췌
불법의 생명존엄 사상을 바탕으로 인술펴는 의사선생님
환자는 모두가 내 아버지·어머니! 주민은 모두가 병원 홍보대사
하얀 가운에는 두려움이 스며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아팠던 기억, 병에 대한 불안 등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딱딱하거나 불친절한 의사를 만났던 경험도 한몫 할 것이다. 그래서 의사의 따뜻한 한마디는 환자에게 안심이다.
경북 영덕군 영해면 성내1리에 있는 권외과의원(원장 권영대). 영해시외버스터미널 바로 뒤편에 자리잡은 이 병원은 친절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병원에 들어서면 산뜻한 인테리어와 깔끔한 분위기가 눈에 띈다. 시골의 특성상 외과를 비롯해 내과, 정형외과, 소아과 등 대부분의 진료과목을 책임진다. 병원 식구는 권 원장을 비롯해 물리치료사 1명, 간호조무사 3명 등 모두 5명이다.
최근에 병원 식구가 된 권은미 간호조무사는 “원장님이 친절하고 단골 고객이 많기로 소문이 나서 찾아왔어요. 진료할 때 환자를 세심하게 살피시고 처방전을 내릴 때도 얼마나 고민하시는지 몰라요.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행복한 분들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병원 자랑을 했다.
권영대(46, 외과전문의) 원장에게 제일의 원칙은 ‘환자를 가족처럼’ 여기는 것. 1996년 개원한 이래 이 원칙을 줄곧 지키니 고객들의 신뢰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졌다.
“언제나 어머니, 아버지처럼 환자들을 대해요. 그리고 많이 웃어요. 학창시절에는 웃음이 정말 많아 선생님께 혼이 난 적도 있었지요.”
권 원장이 진료를 시작하는 것은 오전 9시. 포항에서 출퇴근하는 그는 날마다 1시간 10분씩 차로 달려서 병원에 도착한다. 그리고 바로 진료를 한다. 환자들이 병원 문을 열기가 무섭게 몰려들기 때문이다. 진료 1시간 전부터 건너편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는 할머니들도 많다.
진료는 주중에는 오후 6시 30분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2시까지 계속한다. 10여 년간 주민들에게 신뢰를 쌓은 덕분에 환자는 끊이지 않는다. 한번은 하루에 332명의 환자가 몰려들어 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는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의사의 꿈을 가진 것은 고교시절. 시골에서 살면서 배움에 대한 한을 가졌던 아버지는 아들이 교사, 경찰관, 의사 중 하나의 직업을 갖기를 바라셨다. 이중 자신의 관심과도 맞고,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이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구가톨릭대학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1993년 2월 외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1996년 7월 이곳에서 개원한 것은 군 복무 시절의 인연 때문이다. 전방을 거쳐 포항에서 2년간 군의관으로 근무한 것이 계기였다.
“포항에서 개업한 친구들 도움으로 개업을 했지만 솔직히 걱정도 많았지요. 그런데 한 주도 지나지 않아서 100여 명의 환자가 찾아와 성공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정작 큰 어려움이 생긴 것은 개원한 지 5개월쯤 지났을 때였어요.”
그 때 종합병원에 입원했던 결핵 환자가 찾아왔다. 포도당 주사를 놔주었는데, 환자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그는 응급처치를 하고 구급차를 불러 환자를 종합병원으로 보냈다. 그런데 환자가 구급차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환자는 그야말로 사망 일보 직전에 병원을 찾은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중에 불가피한 일을 겪은 셈이지요. 그 후로는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해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지 종합병원으로 보낼지 적절하게 대처합니다.”
그 후로는 가슴 뭉클한 일들이 훨씬 많았다. 몇 년 전에 급성 심근경색에 걸린 50대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10분, 20분 아니 1~2분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바로 119에 전화했는데, 30분이 지나서야 구급차가 왔다. 그 사이에 응급처치를 하며 환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진땀을 뺐다. 다행히 목숨을 구한 그 아주머니는 나중에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한번은 장이 안 좋다며 한 할머니가 찾아왔다. 단순 엑스선 촬영에서는 장내 가스만 보였지만 가만히 증세를 들어보니 대장암에 걸린 듯했다. 할머니에게 종합병원 정밀검사를 권했고, 그 할머니는 대장암 수술을 마치고 건강을 되찾았다. 이와 같이 그의 손길을 거쳐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은 셀 수 없다. 이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권외과의원을 소개하며 자연스레 홍보대사가 됐다. 그리고 가끔씩 보자기에 과일을 싸와서 꺼내놓거나 직접 기른 채소를 건네는 등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끼게 한다.
그는 ‘늘 주민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자원봉사도 시작했다. 보육원 환자들에게 진료를 해주고 어린이날에는 성금을 낸다. 몇 년 전부터는 한 달에 2번씩 요양원을 찾아 노인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그들의 건강을 보살펴준다.
이러한 삶의 이면에는 생명존엄의 불법(佛法)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신심(信心)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병고를 겪던 어머니를 따라서였다. 그는 “나날이 공덕 속에 살고 있어요. 지금 돌아보면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다니고 병원을 개원한 후에도 어려움을 모르고 지냈어요”라고 말했다.
좌우명처럼 늘 마음에 새기는 것은 “일념에 억겁의 신로를 다하면 본래 무작의 삼신이 염념에 일어나느니라”(어서 790쪽)라는 성훈이다.
그는 앞으로도 주민들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소박하게 살고 싶단다. 그렇지만 광선유포(廣宣流布)를 위해서는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전진하겠다고 다짐한다.
“고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광포를 지휘하시는 위대한 스승께 호흡을 맞춰 더욱 사명에 도전하겠습니다. 1층에 병원, 2층에 개인회관을 제공하겠다는 목표가 있기에 즐겁게, 희망에 넘쳐 달려가겠습니다.”
·영일권 용흥지부 지부장
장호정(hjjang@hknews.co.kr) | 화광신문 : 09/03/13 819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