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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대건패밀리 대표 유동석씨
㈜대건패밀리 대표 유동석씨
(도봉권 창동지부장)

지구촌 곳곳에서 ‘내손 거친 옷’ 만날 그날 향해 무한도전!
신용바탕으로 20여 년 무역 외길 걸으며 노하우 축적
신심근본으로 한계 도전 학회・사회서 일류인재로 성장

“신용 하나만은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거래처와 약속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킵니다.”

유동석(44) ㈜대건패밀리 대표는 신용만한 재산이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20년 넘게 무역업을 하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던 원동력 또한 두터운 신용이었다.

서울시 방학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 한 켠에는 각양각색의 원단 샘플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섬유회사들이 보내온 블라우스, 란제리, 드레스 원단 샘플이었다. ㈜대건패밀리는 여성용 원단을 전문적으로 수출하는 무역회사다. 직원은 유 대표와 여직원, 생산관리를 맡은 직원이 전부인 작은 회사다. 무역 관련 업무는 유 대표 혼자서 도맡다시피 한다.

그에게는 요즘같은 경제불황 속에서도 하루 해가 짧기만 하다. 섬유회사들이 보내오는 많은 원단 샘플을 검토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해야 한다. 바이어들도 자주 만나야 한다. 게다가 한 달에 한 번은 중국 출장을 가야 한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중국의 생산 공장에서 원단을 만들어 수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출근과 동시에 만사를 잊고 회사 일에만 몰두한다”라고 자신의 일상을 말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무역 일을 꿈꿨다. 어렴풋한 그때의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신념을 갖고 20년간 외길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위대한 스승의 제자로서, 학회원으로서 사회에서 꼭 승리한다’는 신념을 갖고 지난날 도전에 도전을 거듭했다.

무역업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87년. 군 제대 후 무역회사에 취업하려고 고향을 떠나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 취업한 곳은 봉제공장이었다.
“힘들게 일하던 중 바이어들 모습을 보게 됐어요. 정말 멋져 보이더군요. ‘나도 언젠가는 저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그래서 꼭 꿈을 이루겠다고 결심하고 기원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첫 직장에서 무역 업무를 두루 배웠다. 처음에는 무역 용어가 어려워 어학사전을 들춰보는 것이 일이었지만, 무엇이든지 성실하게 배웠다. 이렇게 해서 4년 만에 무역 실무를 완벽하게 익혔다. 그는 이어서 영업을 배우려고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 회사는 본사가 대구에 있었고, 서울에 막 무역부를 만들며 직원을 채용한 것이다. 부서의 직원은 그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거래처도 전무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활동무대를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막상 영업을 시작하니 고민이 많았어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두렵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열심히 창제하고 현장활동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성격도 적극적으로 바뀌었어요. 학회원으로서 직장에서 일인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는 이후 영업에서 최고 실적을 거뒀다. 입사 3년째인 1994년에는 영업과장으로 진급했고, 회사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무역부 직원들도 3명에서 10명으로 크게 늘었다. 1995년 7월에는 혼자서 1백만 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그때는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되돌아 보면 직장에서 최고 실적을 올렸을 때 학회에서도 최고 결과를 만들었어요. 부지런히 현장을 달리며 어려운 환경에 처한 남자부들과 돌파구를 열었어요.”

그에게도 큰 위기는 있었다. 영업과장으로 활약하던 1997년 겨울, 회사가 하루 아침에 도산하고 말았다. 경영진의 실수가 원인이었다. 그에게는 날벼락과 같은 일이었다.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떠올리니 눈앞이 캄캄했다.

“7년간 청춘을 바친 회사였는데……. 한순간에 무너지더군요.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학회 선배에게서 ‘숙명전환의 기회’라는 격려를 받고 다시 일념을 다잡았습니다. 그러자 1주일만에 서울사무소 소장으로 스카우트 될 수 있었어요.”

오랫동안 꿈꾸던 자신의 회사를 설립한 것은 1999년 10월. 그는 회사를 크게 세우겠다는 포부를 담아 ㈜대건패밀리라고 이름을 지었다. 처음에는 사무실 보증금과 임대료만 갖고 시작했지만, ‘신심 근본으로 하면 반드시 길은 열린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설립 3개월 만에 놀랄만한 실적을 거두며 사업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는 회사 설립 첫 해, 3개월 만에 30만 달러의 실적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한국SGI 도봉상승문화회관 건너편으로 사무실을 이전・확장했다. 지난해에는 중국에서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학교 선배를 만나,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며 삼각무역을 시작했다.

“앞으로 길은 무한하게 열려 있습니다. 무역업계 20년 노하우를 바탕으로, 세계 어디에서나 제 손을 거친 옷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을 만들 겁니다.”


장호정(hjjang@hknews.co.kr) | 화광신문 : 08/06/27 787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