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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진주국악예술단 회장 강옥남씨
진주국악예술단 회장 강옥남씨
(진주권 신안지부 婦반지도원)

41년을 우리가락과 함께 한 이 시대 진정한 소리꾼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면서도 또 다른 배움의 길 찾아
신심으로 화락 가정 이뤄・국악보급 후배양성 힘쓸 터

“소리는 ‘한(恨)’으로 하고, 춤은 ‘혼(魂)’으로 춥니다. 우리나라 사람 심연 에는 이 한과 혼이라는 정서가 자리잡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소리를 들었을 때 왠지 가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강옥남(59)씨가 정의하는 우리 소리와 춤이다. 강씨가 소리와 접한 것은 한창 꽃다운 나이인 18세 때다. 올해로 41년 세월을 소리와 함께 했다.

강씨는 현재 진주국악예술단 회장, 소리새미 예술단 단장,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이수자, 경남무형문화재 제3호 진주한량무이수자, 제12호 진주포구락무이수자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이런 이력의 이면에는 강씨의 배움에 대한 욕심이 컸다.
강씨는 “지난 41년간 한 분야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우리문화를 배우고 넓히겠다는 욕심에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판소리, 남도민요, 전통 춤과 무용, 가야금, 장구 등 많은 것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배울 것이 많아 틈틈이 강의를 찾아 다닙니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처음 소리를 배울 당시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사실 강씨는 소리를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마음은 없었다. 그저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있는 정도였다.

강씨는 “친정 아버지께서 소리(판소리)를 좋아하셨죠. 어느 날은 나를 데리고 국악원에 가시더만 덥석 등록을 시키셨습니다. 이게 계기가 됐죠”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국악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 강씨 또래의 아이들이 없었다. 강씨는 “흥미가 점점 약해져 국악원에 빠지는 날도 많았죠. 당연한 일이죠. 당시 제 나이가 18살 때니까, 한참 친구들과 어울릴 때잖아요”라며 수줍게 말을 이었다.

이런 강씨에게 소리를 가르쳤던 선생님 한 분이 강씨의 목소리가 판소리에 딱 어울린다며 계속 해볼 것을 권유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준 덕분에 현재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선 강씨는 “결국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당시 흥미를 잃지 않게끔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지금의 강옥남이 있는 것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강옥남씨는 하루가 너무 빨리 간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자주 한다.
하루 일과가 강의와 공연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한참 많이 할 때는 진주시내의 사회복지관 문화강좌, 어린이 집 문화강좌, 동아리강좌 등에서 강의를 했다. 여기에 더해 강씨가 단장으로 있는 소리새미 예술단 공연활동, 해외초청공연까지 정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정이 이어진다.

강씨는 해외공연을 통해 우리문화가 세계인의 공감을 많이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벽안의 외국인이 우리 정서를 이해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무대 위에서 바라보면 사람들의 얼굴에 감동의 빛이 서려 있는 것을 자주 본다고 한다.

특히 일본공연이 기억에 남는다는 강씨, “무대에서 출연진이 함께 아리랑을 합창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객석에 있는 한국 교포뿐 아니라, 일본 관객들까지 함께 아리랑을 따라 부르는 것을 보면서 감동받은 기억이 납니다”라고 회상했다.

강씨의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바쁜 일정으로 늘 집을 비우는 강씨의 활동을 이해해 주고, 어느새 가족이 함께 작은 국악연주회를 할 정도가 됐다.

강씨는 “가족에게 미안하면서도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가족의 응원이 없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항상 감사하죠”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강옥남씨는 또 “우리 가족이 이렇게 한데 뭉쳐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 이면에는 신심(信心)의 힘이 큽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씨의 가족은 진주에서 일가화락의 신심을 지속하고 있다. 남편 이형신(진주권 부지부장), 아들 형제도 각자가 속한 부서에서 성실히 사명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틈틈이 학회 회합에 가족이 함께 나와 국악공연을 하는 등 부러움을 사고 있다.

강옥남씨는 “한 사람의 예술인이 탄생하기까지 정말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국악은 배울수록 그 깊이가 더합니다. 우리가 하는 신심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일매일 자신을 점검하고 단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강씨의 인생목표는 명확하다. 앞으로도 우리 것을 보급하고 넓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할 것을 결의한다.


조성연(syjo@hknews.co.kr) | 화광신문 : 08/04/18 7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