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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교학

 

  • [지용의 사명과 실천] - 어서

  • 관리자

  • 201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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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

 

‘어서’는 크게 구분해서 법문을 설한 논문과 제자 단나에게 보낸 서간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또, 한문체로만 된 것과 한문과 가나 혼용 문체로 된 것이 있는데 어서는 가나가 섞인 평이한 문체로 쓰여 있습니다.
대성인 재세 당시의 민중은 대다수가 글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에 대성인은 난해한 한문체보다 알기 쉬운 가나 혼용 문체로 가르침을 설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양한 비유나 고사를 인용하면서 법문의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대성인 입멸 후 닛코 상인을 제외한 오노승(닛쇼, 니치로, 니코, 닛초, 니치지)은 대성인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는커녕 이처럼 중요한 어서를 멸시했습니다.

□학회는 닛코 상인의 정신을 계승하여 ‘어서’를 발간
오노승 중에는 가나가 섞인 어서는 대성인의 수치라 하여 재생지로 사용하거나 태우는 자도 있었습니다. 이는 대성인이 말법의 ‘어본불’이라는 사실을 오노승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닛코 상인은 대성인의 저작을 모두 ‘어서’라고 하여 소중히 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어서를 수집하신 후에 이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열심히 서사하셨습니다. 이러한 닛코 상인의 정신을 계승하여 창가학회에서는 도다 조세이 2대회장의 발원에 따라 1952년 4월 28일에 《니치렌 대성인 어서전집》을 발간했습니다.
호리 니치코 상인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상전서까지 포함한 대성인의 어서를 하나로 집대성한 것은 700년 동안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쾌거였으며 어서를 신앙의 근본으로 삼는 창가학회의 신심을 보여 준 위대한 사업이었습니다.

□종문은 탄압을 두려워하여 어문을 삭제
이와 반대로 일련정종 종문은 전시 중에 국가신도와 결탁한 군부 권력의 탄압을 두려워하여 시대의 정세에 비추어 어서 어문을 삭제하는, 대성인의 문하라면 도저히 하면 안 되는 과오를 범했습니다. 1941년 8월에 종문은 어서 간행을 금지하는 통달을 내리고 같은 해 9월에는 종무원 교학부장 이름으로 총 14곳에 이르는 어문 삭제를 통달했습니다. ‘어서 근본’을 관철한 창가학회와 어서를 계속해서 경시해 온 종문의 차이는 아주 명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