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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교학

 

  • [어본존] - 남묘호렌게쿄

  • 관리자

  • 201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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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나무(南無)]’ : 영원한 행복을 위한 귀명

 

나무(南無)’는 범어로서 이것을 한어로 번역하면 ‘귀명’이라고 합니다. 그 귀명하는 대경(對境), 대상(對象)에 ‘인(人)’과 ‘법(法)’이 있습니다.
‘인’은 인본존이신 니치렌 대성인입니다. ‘법’은 말법의 법화경이며 법본존인 ‘남묘호렌게쿄’입니다. 즉 인법일개(人法一箇)의 대어본존님에게 귀명하는 것이 진실 중의 진실한 귀명입니다. 이 귀명을 다시 말한다면 ‘귀명’이라 해도 여러 가지 귀명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이나 연구에 목숨을 걸고 몰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등산가로서 산에 목숨을 바치는 것을 본래의 희망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귀명은 확고한 행복에 통하는 귀명은 아닙니다. 무엇에 귀명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의 행, 불행이 결정됩니다. 눈앞의 일에만 집착하는 인생, 낮은 목적에만 귀명해서 만족해 하는 인생, 이만큼 불쌍한 인생은 없습니다.
인생에서 최고 무상(無上)의 귀명은 니치렌 대성인에게 귀명하고 ‘남묘호렌게쿄’에 귀명하는 이외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귀명입니다. 그래야 현실적으로 절대 무너지지 않는 확고한 행복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행복, 세계의 참된 평화인 광선유포라는 법전에 모든 것을 바치는 모습이야말로 진실한 귀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본존을 믿고 창제한다는 것은 우주의 본원력에 귀명하는 자세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복운이 내 생명속에 갖추어진다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또 “귀(歸)라 함은 적문불변진여(迹門不變眞如)의 이(理)에 귀의함이며, 명(命)이란 본문수연진여(本門隨緣眞如)의 지(智)에 의거함이라. 귀명이란 남묘호렌게쿄이니라.”(어서 708쪽)고 있습니다. 적문불변진여의 이에 귀의한다는 뜻은 대우주의 본원력이 ‘남묘호렌게쿄’이므로 이 본원에 귀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몸도 묘법의 당체고 우주도 묘법 그 자체입니다. 또 우리가 묘법을 불렀을 때 내 생명이 대우주 본원의 리듬에 합치합니다. 이것이 불변진여의 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 우주의 본원력인 ‘묘호렌게쿄’가 현실 생활에, 또 생명 활동에 용현합니다. 그 생명력, 지혜가 원천이 되어 고난과 고뇌를 타개하고 인간변혁, 생활변혁을 성취합니다. 이것이 “수연진여의 지에 의거한다.”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면 어서 그 자체는 불변진여의 이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철리이자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열심히 그 어서를 연찬한다면 바로 그것이 불변진여의 이에 귀의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불변진여의 이인 어서를 신심과 지혜로 터득하여 자신의 생활 양식으로, 인생관, 사회관의 원천으로 한다는 것은 수연진여의 지에 의거한 것에 해당합니다. “귀명이란 남묘호렌게쿄이니라.”는 말씀은, 우리가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름은 우주의 리듬에 합치한 도리에 맞는 자연 본연의 모습이고, 그 힘이 현실 생활에 위대한 지혜와 활력이 되어 발휘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묘법은 우주의 대철칙이며 대철리인 동시에 왕성한 생명력과 빛나는 영지의 원천이 됩니다.

 

▶ ‘묘호(妙法)’ : 무명과 법성은 하나

 

‘묘호(妙法)’는 <어의구전>에 “묘란 법성(法性)이고 호란 무명(無明)이며 무명 법성이 일체임을 묘호라 하느니라.”(어서 708쪽)고 있습니다. ‘묘호’를 무명과 법성의 측면에서 말하면 묘는 법성이며 깨달음을 말합니다. 호는 무명이며 미혹을 말합니다. 따라서 ‘묘호’라고 말할 때 이미 무명과 법성이 일체임을 나타냅니다. 우리 일념속에는 무명과 법성이 함께 포함되어 있으며 구계와 불계가 함께 십계호구,일념삼천의 당체입니다. 이 당체가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수지하고 창제함으로써 불계의 생명활동이 나타납니다.

 

▶ ‘렌게(蓮華)’ : 지금 한 순간의 생명에 영원한 미래의 공덕이

 

‘렌게(蓮華)’는 어의구전에 “렌게란 인과(因果)의 이법(二法)이고, 이것 또한 인과일체이니라.”(어서 708쪽)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과구시(因果俱時)를 설하신 글월입니다.
인과의 이법은 우주, 만물을 꿰뚫는 법칙이지만, 이것을 나누어 보면 ‘인과이시(因果異時)’와 ‘인과구시’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 "열심히 공부하면 시험에 합격한다."는 등으로 보는 시각은 원인과 결과가 시간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인과이시’라고 합니다.
이와 반대로 손가락 끝에 불이 닿아서 뜨겁다고 느끼는 경우, 불이 닿는 것은 ‘인(因)’이고 뜨겁다고 느끼는 것은 ‘과(果)’로서 일순간의 인과입니다. 또 화를 내면 인상이 변하는데 화내는 인과 인상이 변하는 결과는 동시의 소작입니다. 이것은 비슷한 사례로서, ‘인과구시’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와 같이 한 순간에 인(因)과 과(果)를 갖추는 것을 ‘인과구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과이시, 인과구시라 해도 두 가지 인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견해의 차이이고,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고 해도 씨앗을 뿌렸을 때에 이미 열매가 맺는다는 결과를 내포합니다. 원인과 결과를 엄밀하게 추구한다면 모두 인과구시이며, 인과이시는 얕은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어서〉에 “남을 경시하면 도리어 자신이 남에게 경이(輕易) 당하느니라. 형상단엄(形狀端嚴: 얼굴이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을 헐뜯으면 추루(醜陋: 얼굴이 추악해지는 것)의 과보를 얻고 … 이는 통상(通常)의 인과의 정해진 법이니라.”(어서 960쪽)는 말씀은, 과거 행업의 과보를 현재에 받고 현재의 행위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과이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인과구시’는 불법의 극리로서 일념의 심법(心法), 즉 생명에는 인과 과가 동시에 갖춰져 있음을 밝힙니다. 일념의 심법(생명)의 인과구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명에는 십계가 있으나 이 경우 구계를 인으로 하고 불계를 과로 하여 구계즉불계가 되고, 또, 십계는 서로 갖추며 서로 융합해서 일념의 생명에 갖춰져 있다는 측면입니다.
두 번째는 십계의 각계에 ‘인과구시’가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화를 내면 인상이 변하는 것은 수라계의 ‘인과구시’이며, 또 창제를 하는 경우는 믿는다는 인(因)과 제목을 부르는 과(果)를 동시에 갖추고 있으니 이것은 불계의 ‘인과구시’의 예입니다. 생활 차원에서 말하면, 생명이 영원한 존재라 해도 현실에서는 한 순간의 생명이 연속하는 것입니다. 즉 과거의 업인도, 미래의 과보도 지금 한순간의 생명에 갖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최고의 인생입니다.
지금 한 순간의 생명이 ‘인(因)’이 되며 영원한 미래의 ‘과(果)’가 또한 이 한 순간에 구족합니다. 이것이 ‘인과구시’입니다.

 

▶ ‘쿄(經)’ :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언어와 동작

 

‘쿄(經)’는 어의구전에 “쿄란 일체중생의 언어 음성을 쿄라고 하느니라. 석에 가로되 성불사(聲佛事)를 함을 이름하여 쿄라 한다.”(어서 708쪽)라고 있습니다. 즉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언어, 동작이 쿄입니다. 현인의 언행도 쿄이며, 어리석은 범부의 외침도 쿄입니다. 이 쿄는 그것 자체의 진리와 가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정(非情: 신경이 없는 것)보다 유정(有情: 신경이 있는 것)의 쿄가 높고, 유정 중에서도 고양이나 개보다 범부의 쿄가 높습니다. 또 사람 중에서도 범부보다 지자(智者), 지자 중에서도 대지자(大智者)의 쿄가 높습니다. 대지자 중에서도 부처의 쿄가 가장 높습니다. 우리 생활에서 본다면 어물장수는 어물장수로서 늘 ‘쿄’를 읽고 있습니다.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목수는 목수대로, 기술자는 기술자대로 ‘쿄’를 읽고 있습니다.
‘묘호(妙法)’는 ‘최고로 가치 있는 생명’이며, ‘렌게(蓮華)’라 함은 ‘최고로 가치 있는 생명을 내포한 옥체’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선(善)을 행하는, 즉 대선생활을 행하는 사람의 ‘쿄’야말로 최고이며 진리입니다. 또 생명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쳐서 영원히 계속되는 것을 ‘쿄’라고 합니다. 어의구전에는 “삼세상항(三世常恒)임을 쿄(經)라고 하느니라.”(어서 708쪽)고 있습니다. 생명은 과거세, 현재세, 미래세의 삼세에 걸쳐서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이 삼세상항의 뜻입니다. 이상을 결론지어 보면,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묘호(妙法)이며, 렌게(蓮華)이며, 쿄(經)입니다. 우리는 삼대비법의 남묘호렌게쿄를 믿어야 숙명을 전환하고 성불이라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행복경애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 불도수행의 구극도 이 일곱 자의 “남묘호렌게쿄” 이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마음 깊이 새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