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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회 어서 e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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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좌담회 어서 <효에사칸전답서>안녕하십니까? 이번달 어서는 <효에사칸전답서> 입니다. 이 어서는 1277년 11월 20일, 대성인이 56세에 미노부에서 써서 무사시노 지방의 이케가미에 사는 효에사칸, 다시 말해 이케가미 형제 중 동생인 무네나가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이케가미 형제는 대성인이 입종선언하신 이후 비교적 초기에 입신한 제자라고 전해집니다. 이케가미 가문은 유력한 장인 집안으로 가마쿠라 막부를 섬겼습니다. 그러나 진언율종의 고쿠라쿠 사 료칸을 신봉하는 아버지 야스미쓰가 법화경을 신앙하는 형제를 반대해 형 무네나카와 의절했습니다. 이 어서는 무네나카가 두번째로 의절당한 직후에 쓰신 어서입니다. 무가사회인 당시에 의절은 집안의 상속권뿐 아니라 경제적 기반이나 사회적 신분도 잃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형이 의절당했기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앙을 버리면 동생이 집안의 후계자가 될 권리인 가독상속권을 물려받게 됩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형은 의연하게 신심을 관철했지만 동생은 동요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대성인은 동생 무네나가가 퇴전할 것을 염려해 신심에 힘쓰도록 엄하고도 따뜻하게 격려하셨습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법화경의 적’이 된 부모를 따르지 말고 ‘법화경 행자’가 되어 부모를 구해야 진정한 효도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범부가 부처가 될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방해하려는 ‘삼장사마’가 서로 다투어 일어난다고 가르치며,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현자의 신심’을 관철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끝으로 염불자들에게 속아 대성인을 박해한 사람들이 엄한 과보를 받은 사실을 언급하며 형과 함께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라고 격려하셨습니다. 형제는 대성인의 격려에 힘입어 끝까지 신심을 관철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도 입신했습니다. 그럼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 (어서전집 1091쪽 14행~16행) 조수의 썰물과 밀물, 월출과 월입, 여름과 가을과 겨울과 봄과의 경계에는 반드시 상위하는 일이 있으니, 범부가 부처로 되는 데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반드시 삼장사마라고 하는 장해가 나타나는데, 현자는 기뻐하고 우자는 물러남이 이것이니라. 이어서 [통해]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통해] 썰물일 때와 밀물일 때, 달이 뜨고 질 때,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이라는 계절의 변화가 있을 때는 반드시 그때까지와 다른 일이 일어난다. 범부가 부처가 될 때도 이와 같다. 반드시 삼장사마라는 장해가 나타나는데, 그때 현명한 사람은 기뻐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물러난다. [어구해설] <효에사칸 전>은 이케가미 형제 중 동생인 무네나가를 가리킵니다. 효에부의 ‘사칸’이라는 관직에 있었습니다. <범부>는 평범한 인간을 말합니다. 번뇌, 업, 고에 속박되어 미혹의 세계에서 생사를 반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삼장사마>는 신심을 수행하는 데 방해하는 세 가지 장애와 신심을 수행하는 사람에게서 생명의 빛을 빼앗는 네 가지 작용을 말합니다. [포인트]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경애를 크게 열려고 할 때, 그것을 방해하려고 장마가 서로 다투어 일어나는데 현명한 사람은 이를 알고 기뻐하며 맞서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놀라서 물러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조수 간만 또는 달이 뜨고 지거나 계절이 바뀔 때 반드시 기존과 다른 변화가 일어나듯, 범부가 부처가 될 때도 마찬가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다시 말해 신심에 힘쓰고 숙명전환하여 자기 안에 갖춰진 부처의 생명을 용현시킬 때, 그것을 막으려는 ‘삼장사마’라는 방해가 다투어 일어납니다. 생명의 근본적인 미혹인 ‘무명’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그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수행을 방해합니다. 형이 아버지에게 의절당한 일은 신심에 힘쓰던 이케가미 형제에게 커다란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의 경애를 열기 위해서는 장마를 반드시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기에 장마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장마를 앞에 두고 ‘큰일났다’며 겁을 먹느냐, 아니면 ‘크게 바뀔 기회’로 받아들여 맞서느냐. 중요한 점은 지금의 고난은 장마가 일으키는 소행이라고 간파하는 것입니다. 장마에 분동되거나, 따르거나 장마를 두려워한다면 일생성불의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장마를 이겨내면 반드시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성인은 “현자는 기뻐하고 우자는 물러난다.”며 장마의 출현을 오히려 기뻐하고 신심으로 이겨내는 현자의 삶을 살아가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이 어문을 배독하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생과 사회의 어떤 사태에도 ‘현자는 기뻐하고’라며 맞서는 ‘용기’를 (도다) 선생님은 청년에게 제시하셨습니다. 때로는 낭떠러지에 서서 ‘이제 이것으로 끝인가’ 하고 낙담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신심의 승부처이자 숙명전환의 기회입니다. ‘자, 올테면 오라. 져서 되겠는가’라고 용맹스럽게 싸우면 장마는 반드시 물러납니다. 그리고 암굴왕과 같은 인내로 ‘어디 두고 보자’라며 참을성 있게 버텨내면 나중에 정말 다행이라고 상쾌하게 생각할 수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고난이나 시련에 직면한 때일수록 자신이 크게 바뀔 때라고 받아들여 강성한 신심을 관철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