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담
법화경에는 '모든 인간은 일체 차별 없이, 더없이 존귀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인류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바다장어를 세계 곳곳에… ‘유통업 일인자’로
“10년, 20년, 30년 후에도 대원의 인생을 걷겠다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10년 후에는 더 많은 지인과 친구들과 행복의 길로 함께 하고 싶습니다… 또 제가 일하는 유통가공팀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남미와 아프리카에 수출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고 싶습니다. 세계최고의 장어판매로 학회를 빛내는 인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기운넘치는 대한민국의 바다장어를 유통가공하고 있는 박혜인 씨. 그는 언제나 밝고 힘찬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바다는 보기 좋은 그림일 뿐 아니라 듣기 좋은 음악이기도 하다. 바다가 내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이곳에서 저 먼 곳까지 데려간다. 포구마다 넘실거리는 파도와 세차게 비상하는 물새 그리고 섬들이가득한 통영 앞 바다. 만선의 선장이 박혜인 씨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늘 한결 같은 마음과 성실함으로 현재 근해통발수산업협동조합에서 유통가공팀 주임으로 일하고 있는 박 씨. 기운 넘치는 장어와 함께 5년여간을 지내서인지 그의 얼굴과 목소리는 밝고, 활기찼다.
-. 가공한 장어가 신선하네요.
“대한민국 해역에서 잡힌 장어를 가공해서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수협이라는 브랜드에 걸맞게 위생에 항상 신경을 쓰고, 신선도를 꼼꼼히 체크하고 있습니다. 수년간 저도 매일 저희가 직접 가공한 장어로 아침을 먹고 있습니다. 직접 맛을 체크하기도 하고, 장어의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온라인이나 해외에서 저희가 가공한 장어를 안심하고 드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바다장어의 특징이 있나요.
“색깔을 보면 어디에서 살았던 장어인지 쉽게 구별이 됩니다. 제주해역에서 잡힌 장어는 흐린 갈색이고, 흑산도에서 잡힌 장어는 진한 갈색을 띄고 있어요. 아무래도 진한 갈색을 띈 장어가 더 담백하고, 기름이 많아 소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바다장어인 붕장어는 미끈거리는 점액질이 많아 다른 장어류와 유사한 점이지만, 측선의 위로 흰색의 반점이 균등한 간격으로 줄지어 있어서 갯장어와 쉽게 구분이 됩니다.
바다장어의 재미있는 특징 중에 하나가 산란입니다. 아직 바다장어의 산란 장소와 시기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지금까지도 양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없었나요.
“1980~1990년대에는 생산량의 90% 이상이 활어상태나 1차 가공 상품으로 일본으로 수출되어, 외화획득에도 크게 기여한 효자어업이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2차 가공 상품이 개발되면서 수출이 다변화 되어 중국, 유럽까지 수출되는 수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본과의 수출이 둔화되면서 어가가 하락되고 국내유통마저 감소되어 재고가 쌓이게 됐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코로나19 기간 동안 자택에서 장어를 소비하는 가정이 많아졌고, 바다장어의 홍보효과로 온라인 판매가 급증하게 됐습니다.”
-. 신심(信心)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셨다고요.
“일본과의 무역이 어려워지자 수출이 꽉 막혀버렸습니다. 그로인해 저 또한 큰 괴로움과 어려움에 맞닥뜨렸습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새로운 길을 낼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 때 ‘환경이 아니다. 일체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하나하나 만들 수 밖에 없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라! 무엇인가 결과를 내라!’라는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 스피치를 보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또 남자부 인재그룹 ‘한국신이치회’에서 단련 받은대로 한계의 벽을 느꼈을 때야말로 깊은 사제의 마음을 끄집어냈습니다.
사제의 힘과 용기로 도전한 결과 불가사의하게도 장어 국내판매처가 늘어났습니다. 양질의 장어를 맛보고 싶다는 주문이 끊이지 않게 됐습니다. 또 넓은 미국시장에 진출하게 되는 공덕을 받게 됐습니다. 그 결과 전년 대비 170% 성장이라는 사상최고의 영업수익을 만들어 내게 됐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어려움이 나올 수록 사제의 마음을 되살려야 승리할 수 있다는 체험을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 신입직원 시절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다 일을 하시는 어민들과의 소통이었어요. 워낙 거친 일을 하다 보니, 말도 상당히 거칠게 하시더라고요. 신입직원 시절, 배에 기름을 채우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조업을 마치고, 기름을 채울 때 한꺼번에 배가 들어옵니다. 상당한 양의 기름을 채우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저에게 욕을 하시더라고요. 왜 빨리빨리 안 하냐, 일을 똑바로 안 하냐고 뭐라 하셨어요. 내가 왜 이렇게 일을 해야 하나라는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창제를 많이 했습니다.
또 이케다 선생님의 소설 ‘신·인간혁명’을 연찬하며 ‘모두가 부처의 생명’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더욱 겸손하게 다가섰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저의 경애가 넓어지는 것을 느끼며 선장님들의 본심을 그제야 알 수 있었어요. 겉으로는 거칠어 보이지만, 속마음은 따뜻하고 정이 넘친다는 걸 알게 됐죠.
저도 너그러워지고, 웃으면서 함께 농을 던지니까, 아주 친해지더라고요. 제게 다들 ‘아들’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시고, 배에서 먹는 간식거리도 나눠 먹는 사이가 됐어요. 3년전, 지금의 부서로 이동하니 ‘아들, 이제 출세했네~’라고 하시더라고요.”
-. 기계설계학을 공부하다 수협에서 일하시게 됐네요.
“기계설계학을 전공했는데, 지금은 장어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저도 참 신기하긴 합니다. 조선소에서 기계 설계 쪽 일을 잠깐 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제 적성에는 맞지 않더라고요.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격투기 선수로 활동할 만큼 혈기가 넘쳤거든요.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적성이 안 맞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영업이나 이런 쪽으로도 입사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낙방하기만 했습니다. 잘 되는 일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학회 남자부가 찾아왔어요. 반드시 기원을 하면 혜인 씨가 원하는 진로를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요. 저는 그 말을 100% 신뢰하고, 수동적인 신심을 벗어나 자행화타에 힘썼습니다. 친구들을 포교했고, 현재 지부남자부장으로 육성할 만큼 인재육성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냈지만, 합격한 곳은 모두 통영이 아닌 서울과 울산, 부산이었어요.
친구들에게 ‘나 없어도 신심을 잘 할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친구 두 명이, ‘너 다른 곳에 가면 신심과 멀어질 것 같다’고 하더군요. 정말 많은 갈등이 있었어요. 이 곳에 남아 지역광포에 힘쓰느냐, 이 곳을 떠나 취업을 하느냐였어요. 간절한 기원의 결과 수협에 입사를 하게 됐고, 통영에 남아 학회사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포교를 한 친구를 끝까지 챙기겠다는 강한 일념이 취업을 하게 된 원동력이 됐던 것 같습니다.”
-.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본다면요.
“10년, 20년, 30년 후에도 대원의 인생을 걷겠다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10년 후에는 더 많은 지인과 친구들과 행복의 길로 함께 하고 싶습니다. 친구를 그룹장, 지구리더, 지부남자부장으로 육성했듯 청년육성에 전 혼을 기울이겠습니다. 또 제가 일하는 유통가공팀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남미와 아프리카에 수출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고 싶습니다. 세계최고의 장어판매로 학회를 빛내는 인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바다장어보다 빠르고 힘차다. 뒤돌아 보지도, 주위를 두리번 거리지도 않고, 오직 앞만 보며 걸어가는 발걸음 속엔 학회 청년부의 기세가 담겨있다. 이곳저곳을 넘나드는 생동감은 모두에게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박 씨는 앞으로도 어떠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신심을 확신하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통영권 남자부장